이 책은 경제학관련 분야로는 조금 특별하고 기념비적이다. 미시경제학과 재정학분야에서 대표적인 주류경제학자인 이준구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일종의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간결한 문체와 친절한 설명으로 <경제학원론>,<미시경제학>,<재정학> 등을 펴낸 바 있고 경제학도라면 그가 쓴 이 책들을 최소한 한 권 이상은 읽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잠시 눈을 돌려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에 바람이 났다. 기존의 연구에 대해 반기를 든 셈이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이코노미컬한 인간‘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힌 전통적 경제이론의 ’비합리성‘에 질렸는지 모른다. 한편으론 평생을 경제학 교육에만 힘을 쏟던 그가 ’삐딱선을 타고 삼천포로 흘러들어가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더 이상 눈뜨고 못봐주겠다는 마음에 올바른 경제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강단에서 한 발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걸맞게 국내는 물론 국제경제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아진 국민들의 지적 수요를 지금까지 국내 경제학자들이 충족해주지 못했고, ’괴짜 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상식 밖의 경제학‘ 등 외국인 경제학자에 의한 쉬운 ’행태주의 경제학’ 책들이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재 이준구 교수의 ‘커밍아웃’으로 만들어진 <36.5℃ 인간의 경제학>은 독자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가 행태경제이론에 눈을 돌린 이유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현실의 경제정책의 불합리성은 전통 경제이론의 틀에 얽혀 있는 자들이 내린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내려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경제정책이 불합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경제원칙‘에 입각한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즉,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보이는 세상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 교수는 늦게나마 행태경제이론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변辯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틀을 짜야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어떤 결이 있다면 그 결을 따라 움직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면 비용만 많이 들 뿐 기대하는 성과는 나오기 힘들다. 바로 그 정이 행태경제이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지를 검증해 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해 경제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경제이론에서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36.5℃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본문 7-8 쪽 이 책은 이준구 교수가 지금껏 자신이 공부한 ‘행태경제이론’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 자신이 행태경제이론에 눈뜬 지 얼마되지 않았고, 현재 신학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책에 고백하기도 했는데, 난 학문적 입지에 있어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탄탄한 위치에 있는 저자가 느즈막히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그에게 이러한 ‘변화’는 자못 위험스럽기까지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저자의 이러한 변화의 이유가 경제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는 위정자들 중에는 자신의 제자들이 적잖았기에 이를 통감하고 미래의 경제 정책 입안자들을 위해 새로운 경제학 코드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라면 좋겠다.
저자는 우선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로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태클을 걸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는다고 다짐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 야식과 함께 다이어트 약을 먹는 여성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별 필요도 없는 상품을 충동구매하는 소비자들 등,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경제행위는 결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새로운 경제학의 대안이다. 행태경제이론의 시작은 바로 우리들은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간디처럼 인내심이 많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을 접하면 주류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들의 경제행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매일같이 직접 경험하면서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어 점쟁이를 만난 듯 놀랍고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에 나온 행태경제이론에 대한 책들과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의미를 둔다면 서 너 권의 책을 종합하고 요약해 엑기스만을 한 권에 담았고, 국내의 경제상황에 맞는 사례를 들고 있어 이해가 쉽고, 잘못된 경제정책들의 원인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난 봄 펴낸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이 국내 경제정책의 모순과 폐해, 그리고 비현실성을 낱낱이 지적했다면, 이 책은 이러한 원인이 주류경제학적 근거에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나는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이론보다 정책의 측면에서 훨씬 더 빠르게 확대되리라고 본다. 기본 골격을 바꾸기가 어려운 이론과 달리, 정책의 경우에는 기존의 체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넓게 열려 있는 셈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며 책의 전반에 걸쳐 행태경제이론에 대해 놀라고 있는 저자를 발견하게 된다. 전작들이 자신이 많은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을 전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은 흥미롭고 즐거운 분야에 대해 공부한 학생이 레포트를 낸 듯 하다. 마치 몇 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은 듯 갈증을 해소한 듯 깨달음에 이른 저자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종전에 아맂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눈 뜨게 되었다. 전통적 경제이론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정책을 보는 내 시각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언제나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밑에 깔고 저액을 보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행태경제이론 덕분에 이제 나는 훨씬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정책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에 접하고 나서부터 경제학이 더욱 흥미로운 학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경제이론 중에는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없는 것들이 많다. 단지 논리의 유희라고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인간 본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태경제이론을 생동하는 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 학자 인생에서 행태경제이론을 만난 것은 뜻밖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 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지극히 적다. 일반 대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학자들 중에도 이런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아직 적지 않은 형편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일찍 이 이론에 눈을 뜨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독자와 함께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해 보자는 초대장 역할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책에 밝혔다. 이 말은 곧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만으로는 경제학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고백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대표 경제학자인 이준구의 미래 연구과제는 ‘행태경제이론’임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교수의 이 언급은 대한민국 경제학에도 ‘행태주의이론’이 많이 채택될 거라는 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를 계기로 행태경제이론이 단순히 ‘재미 삼아 읽는 경제학’ 정도의 수준을 넘어 경제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발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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