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한미 FTA를 수정하겠다는 미국의 요청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광우병 사태 당시 내용수정 요청은 국익에 반한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와 지금의 미국 정부의 태도는 상당히 비교가 되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 있는 부분을 고치는 작업에 들어가면서도 양국은 기존 합의의 내용 자체를 수정하는 '재협상'은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다고 합니다. 김 본부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조정(adjustment)이라고 했다”고 말하며 기존 합의 문구의 잔손질 정도에 국한한다는 게 우리 측 입장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입장일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은 '잔손질'의 범위를 넘을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2007년 6월 본협상 타결 당시 한국은 모든 연령에 대해 수입을 허용한다고 했다가 '촛불 사태'를 겪은 뒤 추가협상을 통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조정했다. 당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시점에 대해서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된 때'라는 모호한 말로 봉합했습니다. 즉, 재수입 시점에 대한 합의 기준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잣대가 없다는 말은 뒤로 물러서기도 쉽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기준이 명확하면 깰 수 없지만 모호한 기준은 논리만 개발하면 손쉽게 뒤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와 FTA를 두고 '빅딜'이 이뤄졌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어 농식품부 뜻대로 갈 수 있을지 분명치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 측에선 쇠고기 이외에 자동차 무역 불균형도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내용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의 추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정부는 국민들을 설득하려 들고 있습니다. 사실 FTA의 추진의 가장 간단한 배경은 비교 우위에 있는 부문을 극대화 시켜서 가치적 효용을 최대화 하는 것에 있습니다.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한미 FTA에 따라 한국과 미국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미 FTA가 중요한 본질적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 FTA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농업 등 1차 산업을 희생하는 대신 제조업 부문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국민들에게 좋은 품질의 1차 생산물을 공급하면서도 2차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 경쟁력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2차 산업의 경쟁력을 우리가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FTA의 수혜를 받는 제조업 부문과 FTA로 인해 피해를 받는 1차 산업부문들에 대해 FTA 시행 이후의 이러한 불균형 해소 방안 들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FTA는 비교 우위론에 기반하여 부의 불균형을 촉진하는 정책인데 이러한 부의 불균형을 촉진시키는 문제를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자원이 없는 소국으로서 경제 대국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만..) 하지만 우리는 한미 FTA의 본질이 바로 산업간 불균형을 극대화하는 정책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러한 FTA의 전제조건은 FTA로 인해 초래되는 불균형을 어떤 식으로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 답변을 내놓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이름 없는 수 많은 농부, 어부 등 또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익을 빼앗고 글로벌 기업들의 이윤을 극대화 할 경우에 이러한 불균형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분명한 메세지가 필요합니다. 즉, 정부는 시장경제에서 본연의 역할인 부의 재분배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힌 이후에 이러한 불균형정책을 시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미 FTA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는 이유는 사실 이러한 본질적인 전제조건을 전혀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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